지난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를 제소하면서, 미 의회와 행정부, 그리고 대법원까지 암호화폐를 둘러싼 치열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이번 싸움은 미국 내 암호화폐 산업의 퇴출 여부와 함께 디지털 화폐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 그리고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대한 공격적인 조치는 SEC의 막강한 재량권을 내보인 큰 변화다. 이와 관련해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더 이상의 디지털 화폐는 필요하지 않다”며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파괴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SEC는 미국 기업도 아닌, 철저히 글로벌 기업에 속하는 바이낸스와 창펑자오 최고경영자(CEO)를 미등록 증권 판매 및 고객 자금 유용 혐의로 제소했다. 이를 통해 SEC는 자신의 영향력이 비단 미국 내에만 갇혀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했다. 또 코인베이스 소송에서는 해당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대부분 증권이 미등록 증권이라고 주장하며 다수의 기업을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알고랜드, 폴리곤, 솔라나 등의 업체에 법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SEC의 이번 조치는, 직접적으로는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 수탁 모델의 기반이 되는 중앙집중식 금융(CeFi) 시스템을,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탈중앙화 금융(DeFi)이 의존하는 주요 프로토콜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소송전은 SEC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소송 자체가 수년간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3년째 끌고 있는 리플랩스에 대한 SEC의 소송이 대표적인 예다. 코인베이스와 바이낸스가 전력을 다해 소송전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상황에서 SEC 측은 제한된 자원 내에서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더욱이 SEC의 강경한 접근 방식은 미국 정부 내에서조차 폭넓은 지지를 못 받고 있다. 이번 조치가 취해진 시점을 고려하면, SEC는 다른 정부 기관의 추격을 기꺼이 감수하는 듯하다.
SEC에 동조하지 않는 정부 부처
첫 번째는 의회다.
곧 하원에 상정될 법안 초안은 디지털 자산을 분류하는 방법에 대한 매개변수를 설정한다. 또 기존 증권법 내에서 암호화폐(가상자산)를 해석하는 것에 관한 SEC의 권한을 제한함으로써 제소 등 취할 수 있는 역량을 축소한다. 이 법안은 겐슬러 위원장의 공격적 행보를 줄곧 비판해 온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패트릭 맥헨리 의원(공화당, 노스캐롤라이나주)과 농업위원회 위원장 글렌 톰슨(공화당, 펜실베니아주) 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했다.
맥헨리-톰슨 법안이 민주당에 장악된 상원을 통과해 최종적으로 법제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선거철이 다가오며 이 법안은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두 번째는 행정부다. 행정부에는 SEC와 기타 기관에 대한 권한이 있다. 암호화폐 및 디지털 자산의 미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만큼 이번 소송 문제는 대선 캠페인의 주요 화두가 될 전망이다.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한 세 명의 후보가 암호화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바이든에 도전장을 내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경쟁자로 떠오른 론 데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그리고 공화당 내 경선 후보인 생명공학 기업가 출신 비벡 라마스와미까지. 현재 공화당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는 대체불가능토큰(NFT)을 기금 마련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최근 잇단 혐의로 기소되며 후보직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든의 재선 여부와 상관없이 암호화폐 업계에 대한 높은 관심은 향후 SEC가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법원이다. 지난달 대법원은 수질오염방지법(CWA)에 따라 미국 환경보건국(EPA)이 토지 소유주에 대한 규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축소했다. 과연 이것은 SEC, 그리고 암호화폐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현재 법원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권한이 축소돼야 할 첫 번째 규제기관으로 환경보호청을 꼽는다. 이처럼 행정부 내 각종 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다가오는 가운데 SEC도 그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지금의 ‘암호화폐 전쟁’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셈이다.
전쟁의 결과는?
이번 전쟁은 다양한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결과에 대한 위험도 크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다.
겐슬러의 전면적인 공세 전략이 승리한다면, 이는 사실상 미국 내 암호화폐에 대한 사망선고가 될 수 있다. 개발자들은 두바이, 버뮤다, 싱가포르, 프랑스 등 암호화폐 혁신을 위해 선제적인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는 여러 국가로 대거 이동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은행 라이선스를 받은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나, 기존의 규제기관과 공기업이 주도하는 실물 자산 토큰화 전략이 미국에서 허용, 또는 장려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는 미국에서 ‘금지된’ 크립토 블록체인의 비허가 형 아키텍처와 연동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따라서 낙후된 미국 자본시장은 다른 지역에서 육성되는 새로운 유형의 프로그래밍 가능 화폐 및 탈중앙화 거버넌스 모델과 경쟁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의회와 법원에서 암호화폐 지지자들의 반격이 거세지면, 지금과 같은 공격의 물결이 사그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큰 의미가 없다. 이 같은 승리가 암호화폐를 둘러싼 정치적 싸움을 더욱 공고히 한다면, 주류의 수용과 채택을 위한 더 크고 중요한 싸움은 끝을 모르고 계속돼야 할 테니 말이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크립토라는 주제가 정치를 초월하는 것이다. 크립토는 결국 기술이므로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내려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확산시키는 일은 결국 크립토 커뮤니티가 맡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노력은 교육에 집중돼야 한다. 실제 사용 사례를 보여주고, 탈중앙화한 가치 교환 및 데이터 공유에 대한 업계의 접근 방식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혜택을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적 절차에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의회와 행정부, 법원 모두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긍정적인 내러티브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기후, 지정학적 긴장, 인공지능의 사회 잠식 등 불확실성이 너무나도 큰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긍정적인 내러티브를 원하는 수요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출처: 코인데스크 코리아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9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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