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으로 치부될지 모르겠다. 필자는 미국 내 일부 규제기관의 반 암호화폐(가상자산)적인 태도가, 이 산업을 억압하고 파괴하고 싶어하는 금융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적 견해에 늘 저항해 왔다. 비록 그 방법은 잘못됐을지언정 소비자 보호를 위한 선의의 노력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보면 그런 내 짐작보다 훨씬 더 불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첫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자국 내 소매 고객에 대한 스테이킹 서비스 제공을 철저히 금지할 것이라는 징후가 포착됐다. 스테이킹은 지분 증명 블록체인이 검증자에게 제공하는 토큰 보상을 투자자에게도 공유하는 서비스를 일컫는다. 지난 8일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최고경영자(CEO)는 SEC의 스테이킹 서비스 금지가 임박했다고 암시한 바 있다. 곧이어 지난 9일에는 코인베이스의 경쟁사인 거래소 크라켄이 미국 내 스테이킹 서비스를 완벽히 포기하고 3000만 달러의 벌금 납부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둘째, 캐슬 벤처스의 닉 카터 총괄 책임자와 블록체인 어소시에이션의 제이크 처빈스키 최고정책책임자가 분석한 현재 상황, 그리고 미국 달러 은행 거래와 관련한 바이낸스의 문제 상황 등을 종합해 볼 때 규제 당국은 미국 은행에 암호화 관련 기업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듯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참여 기회를 대규모 기관투자자로 제한해 미국 내 일반 대중의 참여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은행을 비롯한 중개 기관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여러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유동성 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들 중개 기관은 기득권의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든 자기 이익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자국민의 암호화폐 프로젝트 투자와 구축을 어렵게 만든다고 해서 미국 외 지역 사람들의 행동까지 막을 수는 없다. 미국 내 강경 조치는 해외 활동만 부추길 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미국은 '기관 중심의 암호화폐 산업'에 관한 기회는 계속해서 창출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혁신을 통한 기회는 놓치고 말 것이다.
스테이킹 금지?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스테이킹 서비스는 미등록 증권으로 간주해 코인베이스처럼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래소는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줄곧 경고해왔다.
논란의 핵심은, 지분 증명 블록체인 검증자가 기존 토큰을 락업함으로써 정직하게 유지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위험에 빠트린 채, 신규 토큰을 거래하고 거래 수수료 형태로 수입을 얻는다는 데 있다. 이때 SEC 측에서는 새로운 토큰 수입을 약속한다는 점이 하위 테스트(Howey Test)의 한 가지 기준을 충족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위 테스트는 특정 투자 수단이 증권이 되려면 투자자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하위 테스트란 미국 대법원에서 4가지 기준에 해당할 경우 투자로 보아 증권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테스트를 말한다.
크라켄에 가해진 제재를 통해 추측해보면, SEC는 스테이킹된 토큰 투자 풀을 관리하는 중개자로서 거래소의 역할과 하위 기준, 즉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서 파생된 수익'이라는 점을 넘어선 것으로 해석한 듯하다.
그래, 좋다. 법적인 의미에서 스테이킹에 대한 SEC의 반발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왜 하필 지금, 그토록 잔인한 방법을 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SEC 기준에 부합하도록 수정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미국 내에서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강제로 종료해야만 했을까?
이번 조처에 관해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한 헤스터 피어스 SEC 위원은 "문제의 핵심은 암호화폐와 관련해 실행할 수 있는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대처가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SEC의 크라켄 관련 분석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은 SEC에 등록 자체가 가능했을지 여부에 있다. 기존 환경에서 암호화폐와 관련된 상품들은 SEC의 등록 절차를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특히 한창 논란 중인 스테이킹 서비스 같은 상품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여기에는 스테이킹 프로그램 전체가 등록될 것인지, 또는 각 토큰의 스테이킹 프로그램이 개별적으로 등록될 것인지, 중요한 공개 내용은 무엇이 될 것인지, 크라켄 입장에서 회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이 포함된다."
SEC의 제재 시점은 이더리움 개발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이더리움이 '더머지(the Merge)' 이벤트를 통해 작업 증명에서 지분 증명으로 옮겨간 지 6개월도 채 안 된 시점이며, 상하이 업그레이드도 임박해 있다. 해당 업그레이드로 이더리움 보유자는 기존 토큰에 대한 잠금 해제가 가능하다.
또한 이번 조치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이더리움을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선언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나왔다. 이는 일부 영역에서 SEC와 CFTC의 전쟁을 예고하기도 한다. 규제 정책적인 관점에서 이더리움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블록체인에 대한 규제 표준을 수립하는 데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규제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증권법은 소액 투자자, 구체적으로는 부유한 개인이나 기관보다 투자 프로젝트의 각종 남용과 술수에 취약한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더리움 소매 투자자가 토큰에서 수익을 얻을 기회를 갖게 된 지금,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가? 과거 수익이 없는 작업 증명 체인이었을 때는 아무런 위험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 동기가 무엇이든, 최근 SEC의 움직임은 이더리움 검증 네트워크 중앙집중의 위험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더머지를 통해 지분 증명으로 전환한 이후, 기업이 운영하는 소규모 스테이킹 풀이 대량의 이더리움 거래를 검증하고 거래를 검열하기 위해 결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헤지펀드와 벤처캐피털은 스테이킹이 자유롭고, 소액 투자자는 그렇지 않다면 리스크는 오히려 더 커지지 않을까?
코인데스크 대니얼 쿤 기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리도, 로켓풀 같은 분산형 대안에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미국 규제 당국이 탈중앙화 프로토콜 역시 자신들의 규제 범위 내에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SEC는 이들 프로젝트 역시 불법으로 간주하고, 토네이도 캐시 사태 때처럼 창업자와 개발자를 추적할 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로서는 개인투자자가 검증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32ETH를 스테이킹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5만 달러어치에 달하는 그 정도 돈을 누구나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 작업은 절차와 과정이 너무 복잡해 일반 소매 투자자가 직접 실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내 소규모 투자자는 엄격한 규제를 받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좀 더 쉽게 스테이킹에 노출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SEC는 이더리움 ETF는 고사하고 아직 비트코인 ETF조차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또 한 가지 예상되는 결과는, 소매 투자자는 비트코인 같은 작업 증명 체인으로 갈아타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SEC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표준에 대한 지침을 마련 중이며, 이더리움이 지분 증명으로 변환된 후 비트코인 탄소발자국이 이더리움보다 훨씬 더 커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같은 SEC의 처세는 다소 당혹스럽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보면, SEC는 암호화 관련 사고에 대한 포괄적인 지침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일반 대중은 여전히 당혹감을 덜어내지 못한 상태로 남게 될 수 있다.
겐슬러와 그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토큰이 유가증권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경고했다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업계의 불만은 훨씬 더 광범위하다. 이따금 "우리 쪽에 와서 이야기해 달라"며 공개적으로 초대한 것 외에 암호화 기술의 고유하고 분산된 기능을 수용하는 규제 프레임워크를 공동으로 개발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은 전무했다. 더욱이 업계 리더들은 "SEC가 '집행을 통한 규제'를 실천하고 있으며, 크라켄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같은 조치는 SEC가 관료적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일 순 있다. 하지만 크라켄 사례처럼 명확한 법적 프레임워크가 없는 제재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조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혁신 및 기업가 정신에 위배되는 조치다.
바이든 정부의 '초크 포인트 전략'
한편, 은행에 대한 감독과 관련해 훨씬 더 은밀한 방식의 규제가 진행되고 있다.
닉 카터가 개인 블로그에서 언급했듯, 미국 은행이 암호화폐 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당국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카터는 이를 오바마 행정부의 초크 포인트 전략(Operation Choke Point)에 비유했다. 이 전략은 오바마 행정부가 총기 판매상, 포르노 제공업체 등 비주류이나 완전히 합법적인 서비스에 대한 자금 흐름을 제한하기 위해 벌인 은밀한 캠페인을 일컫는다.
그러나 제재를 집행하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법적 프레임워크가 없으면, 이 같은 조치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조장한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새로운 정책은 시그니처 뱅크가 바이낸스의 해외 계정을 폐쇄하려는 시도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미국 달러화 송금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런던에 본사를 둔 한 동유럽 은행의 책임자는 내게 "미국에 본사를 둔 국제 은행 메시징 서비스 스위프트가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 업체에 대한 대규모 송금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그때 미국의 단속이 시작될 것임을 짐작했다.
당시 그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암호화폐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엔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은행은 당국의 지시사항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얼마간의 재량권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수탁 은행 BNY멜론의 비트코인 수탁 서비스가 과연 중단될까? 마이크로소프트가 블록체인,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이유로 은행 계좌가 폐쇄될까?
법적 명확성
크라켄 사태를 포함한 SEC의 최근 제재는 가상자산에 대한 명확한 규제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스테이킹 토큰에 대한 SEC의 조치는 기술적으로는 하위테스트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지만, 해당 기준은 거의 100년 전 대공황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의 시장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블록체인 어소시에이션의 처빈스키가 지적했듯, 법적 명확성에 공백이 생기면 규제 당국은 앞서 언급한 '은밀한 규제'를 기본값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연합과 일본 같은 대규모 관할구역은 물론 버뮤다 같은 소규모 관할구역도 디지털 자산과 가상자산, 블록체인에 대한 명확한 규칙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꽃 피우지 못한 각종 혁신과 무역 활동이 해외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미국 규제 당국이 작년 암호화폐 업계에 발생한 대규모 사건, 사고를 감안할 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임시방편의 땜질식 처방으로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수 있다.
출처 : 코인데스크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9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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