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입국자는 자가격리시 전자팔찌를 차야 한다. 만약 격리공간에서 벗어나면 출입국관리국로 바로 알림이 간다.
싱가포르 정부는 '트레이스투게더'라는 스마트폰 앱도 만들었다. 시민은 상점 등에 입장할 때마다 QR코드를 찍어야 한다.
이 앱을 열면 내가 방문한 장소와 머문 시간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해 내 주변 다른 앱을 인식·기록하고, 이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근처에 있던 이들은 바로 검사 대상이 된다. '함께 추적하자'라는 적나라한 이름이 어울리는 시스템이다.
디지털 기술 덕에 싱가포르 정부는 시민의 동선을 대부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톡 같은 민간 앱을 활용해 반발감을 줄였지만 사실 구현하는 기능은 같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정부의 통제에 익숙해지고 있다. 뉴질랜드 인구보다 많은 520만명이 사망한 인류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터넷을 통해 개인이 더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과 별개로, 디지털 전환이 빨라질수록 국가의 힘은 강력해진다. 권력은 통제력에서 온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고 데이터가 남는 디지털 활동이 많아질수록 정부는 국민을 관리하기 쉬워진다.
중국에선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QR코드 결제가 대세가 되면서 국민의 동선, 경제활동 내용이 모두 기록으로 남게 됐다. 신용·체크카드가 보편화된 한국도 마찬가지다.
장점도 많다. 정부가 놓치는 영역 없이 더 정확하게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사망자를 한명이라도 줄일 수 있다. 통계청은 더 정확한 물가지수를 파악하고, 한국은행은 더 합리적으로 기준금리를 정할 수 있다. 지하경제는 줄어들고 정부의 관리·통제력은 더 커진다.
이런 흐름과 정면 충돌하는 게 가상자산이다. 비트코인은 은행 같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개인 간 코인을 송금하려고 만들어졌다. 은행을 우회하는 건 사실 은행 인가권을 가진 정부의 권력을 무력화하는 일이다.
자유롭게 국경을 넘다 보니 국외 송금을 다루는 외국환거래법과 기획재정부도 건너뛴다. 무엇보다 중앙은행의 화폐 독점 발행권을 무너뜨린다. 중앙은행 총재들이 "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는 디지털 민간 화폐에 대한 경계 발언이다.
코인을 화폐가 아니라 자산으로 봐도 갈등은 남는다. 금융당국은 법상 금융상품이 아니라며 외면한다. 하지만 코인은 처음부터 금융을 대체하기 위해 탄생했고 점차 금융시장이 되고 있다.
단 국가라는 범위와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 코인의 무정부주의(아나키즘) 성격에 주목하는 사람은 줄었으나, 가격이 오르는 배경엔 여전히 이것이 있다.
국내 증시의 하루 가격제한폭(상·하한가)은 ±30%다. 가격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장치인데, 만약 이걸 코인 시장에 도입하면 많은 투자자가 떠날 것이다. 규제가 없어서 이 시장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국내 코인 거래소는 은행처럼 고객 실명 확인을 시작했다. 내년엔 코인 송금 정보를 기록해서 정부에 보고(트래블룰)해야 한다.
그러자 '코인 고래'들이 운영 주체가 모호한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다. 더 나아가 참가자들이 소유권을 소프트웨어로 관리하고 스마트 계약으로 의사결정하는 탈중앙자율조직(DAO)도 늘고 있다. 아직 규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익명의 공간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비트코인의 가장 큰 리스크는 바로 (비트코인의) 성공 그 자체"라고 했다. 가격이 오를수록 정부 규제가 강해질 것이라는 성공의 역설이다.
인류 역사상 국가라는 개념이 어느 때보다 강해진 상황에서 코인의 아나키즘은 정부 권력을 어디까지 회피할 수 있을까? 아니 정부는 보유한 권력을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이 글은 한겨레신문 지면에도 게재됐습니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한겨레신문 오피니언 코너 '헬로, 블록체인'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출처 : 코인데스크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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